마울브론

마울브론 수도원의 회랑

헤르만 헤세는 주정부시험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한 후 1891년 9월 15일에 마울브론 수도원의 기숙학교에 입학했다. 독일에서 가장 아름답고 보존이 잘 된 곳으로 손꼽히는 시토교단의 마울브론 수도원은 1147년에 세워져 1556년에 크리스토프 폰 뷔르템베르크 공작이 주도한 교육개혁에 따라 수도원 부속 개신교 학교로 탈바꿈했다.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였던 요하네스 케플러(1571년-1630년)가 1586년부터 1589년까지 이 학교에 다녔고, 시인 프리드리히 횔더린(1770년-1843년)도 이 학교 학생이었다. 1807년에 이르러 이 수도원부속학교는 장학생들에게 일찌감치 고문을 가르쳐 신학 공부에 대비케 하려는 취지에서 개신교 신학교로 바뀌었다.

헤세는 열 네 살 때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의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나 <유리알 유희>의 요제프 크네히트처럼 "헬라스(Hellas)"라는 이름이 붙여진 기숙사 숙소에서 지내게 된다. 그곳에서의 수업은 혹독했고 여가 시간은 늘 부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 네 살짜리 소년 헤세는 마울브론이 편하게 느껴졌고 그곳 생활에 빨리 적응해나갔다. 특히 고전 연구에 깊이 빠져있던 그는 호머의 작품을 번역하는가 하면 실러의 산문과 클롭슈톡의 송시에 탐닉하기도 했다. 1892년 2월 24일자 편지에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매우 기쁘고 즐거우며 만족스럽다. 이곳을 지배하는 분위기는 무척 내 마음에 든다."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되지도 않은 3월 7일에 헤르만 헤세는 뚜렷한 이유도 없이 그 학교에서 도망쳐 나오고 말았다. 밤새도록 들판에서 추위에 떨던 그는 경관에게 붙잡혀 학교로 되돌아왔고, 8시간동안 감금 당하는 처벌을 받았다. 그 후로 우울증에 빠진 그는 친구들에게도 따돌림을 당하여 외로운 단절감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냈다. 신학교에 들어와서 반년도 채 못 버티고 결국 그 해 5월에 그의 아버지가 와서 칼브로 그를 데리고 갔다. <수레바퀴 아래서>와 더불어 마울브론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서 "마리아브론"이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유리알 유희>에서는 "발트첼"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시 "마울브론의 회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