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옵는 당신께!
당신께서는 유별나게 기꺼이 희생하는 태도를 보이시니, 제가 당신께 7M이나 권총을 부탁해도 되겠지요. 당신께서는 저를 절망에 빠뜨린 이후로 하루 빨리 그 절망으로부터 나를 해방시킬 준비가 되어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6월에 이미 죽었어야 할 목숨이지요.
당신께서는 "네가 슈테텐에 대해 욕을 한다고 해서 너를 전혀 비난하지는 않는다."고 편지를 쓰셨습니다. 하지만 그건 제게도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욕할 권리는 염세주의자에게 유일하게 남은 마지막 권리이므로 빼앗아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이상한 단어이며, 저는 그 단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정말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고 또 사랑하는 누군가를 가리키는 것이겠지요. 그런 사람을 얼마나 갖고 싶었는지! 당신이 제게 조언을 해주실 수는 없는지요… 당신과 저의 관계는 점점 긴장이 더해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제가 인간이 아니라 경건주의자라면, 또 저의 모든 성격과 성향을 지금과는 정반대로 바꾼다면, 저는 당신과 조화를 이룰 수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결코 그렇게 살 수 없으며 또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범죄를 저지른다 해도, 헤세 선생님, 당신이 제게서 삶의 기쁨을 앗아가 버렸으므로 그것은 전적으로 당신의 책임입니다. "사랑스런 헤르만"이 전혀 딴 사람, 즉 세상을 증오하는 자, "부모가 살아있는 고아"로 변해 버린 것입니다.
당신께서는 제게 편지를 보낼 때 "사랑하는 H."와 같은 표현을 한번도 쓴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쓴다면 그건 뻔뻔스러운 거짓말이겠지요.
감독관이 오늘 두 번이나 제게 왔다 갔지만, 저는 그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종말이 결코 머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러면 무정부주의자들만 존재할 것입니다. 슈테텐의 형무소에 갇혀 있는 H. 헤세.
저는 이 사건에서 누가 어리석은 것인지 생각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여하튼 당신께서 이따금씩 이곳에 들러 주셨으면 좋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