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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평생 간직하고 있던 믿음에는 어긋나지만, 나 또한 시인과는 완전히 거리가 멀었고, 심미적인 작업이라는 것도 모두 착각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을까? 충분히 그럴 수도 있지만, 그것이 어쨌든 간에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나 자신을 돌아보는 지옥순례에서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대부분 거짓이었고 아무 가치도 없는 것이었으며, 나의 직업적 소명이나 재능에 대한 것도 어쩌면 망상이었을지 모른다. 내가 한때 어린아이와도 같은 기쁨과 자만심에 가득 차서 내 임무라고 여겼던 것 역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서정시나 철학, 혹은 역사와 같은 분야에서 내 임무, 아니 구원의 길을 찾는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었다. 내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내 속에 진정으로 살아있는 강인한 것이 삶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 그리고 내 속에 아직 살아있다고 느껴지는 것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신의를 지키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