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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개인에게 있어서도 마침내 전쟁이 완전히 끝난 1919년 봄, 나는 스위스의 외딴 시골구석으로 들어가 은둔 생활을 시작했다. 내가 평생동안 인도와 중국의 지혜에 심취해 있었고(그것은 부모님과 조부모님께 물려받은 것이었다), 또 나의 새로운 체험들 가운데 일부를 동양적인 색채로 표현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흔히 나를 "불교도"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 말을 들으면 나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상 그 종교만큼 내가 신앙고백에 대해 아는 것이 극히 적은 경우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불교에는 비록 내가 훗날에야 깨달은 것이지만 뭔가 올바른 것 혹은 진실이 숨겨져 있었다. 인간이 스스로 종교를 선택할 수 있다고 한다면, 나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열망에 따라 유교나 브라만교 혹은 로마교회처럼 보수적인 종교를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만약 그런 선택을 했다면 선천적인 유대감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반대 되는 것을 향한 동경심으로 인해 그렇게 했을 것이다. 나는 우연하게도 경건한 신교도의 아들로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기질적으로나 천성적으로 신교도이기 때문이다(그것은 현존의 신교 종파에 대한 나의 깊은 반감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 진정한 신교도라면 본성적으로 존재보다는 생성에 대해 더 긍정적이므로 다른 교회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속한 교회에도 저항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부처도 신교도와 다를 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