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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나 자신과 내 미래의 목표 사이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심연뿐이었다. 내게는 만사가 불확실했고 모든 것이 무가치했으나, 단 한 가지 변치 않는 것은 그 길이 쉽든 어렵든, 혹은 우스꽝스럽든 명예롭든 개의치 않고 반드시 시인이 되겠다는 결심이었다. 화를 자초하는 것이라고 해야 옳을지도 모르겠으나 그러한 결심의 외적인 성공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내가 13살이 되면서 그와 같은 심적 갈등이 막 싹틀 무렵, 집이나 학교에서의 내 태도는 너무나 실망스러운 것이어서 결국 나는 다른 도시에 있는 라틴어 학교로 쫓겨가게 되었다. 그로부터 1년 후 나는 신학교의 기숙생이 되어 히브리어의 알파벳 표기법을 배우고 다게쉬 포르테 임플리시툼(dagesh forte implicitum)이 무엇인지 거의 이해하게 되었을 때, 갑자기 내면으로부터의 격정이 나를 엄습했다. 그 결과 나는 수도원의 기숙사에서 도망쳐 나와 감금 처분 당하는 처벌을 받게 되었으며, 결국 그 신학교와 작별을 고하게 되었다.

 

그 후 나는 한동안 김나지움(인문계 중고등학교 과정에 해당)에서 공부를 계속하려고 노력했으나 그것도 감금 처분과 자퇴로 끝나고 말았다. 그리고 나서 상인이 되기 위해 일을 배우기 시작했으나 3일도 채 버티지 못하고 다시 도망쳐버린 나는 며칠동안이나 행방을 감추어 부모님께 근심을 끼쳐드리기도 했다. 그 다음에 나는 반년간 아버지의 일을 돕다가 시계공장에서 견습공으로 1년 반 동안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