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7

그리하여 나는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물감을 섞어 붓을 적시면서 그 무한한 마술의 세계에 또 다시 매료되었다. 주홍색의 밝고 경쾌한 울림, 노란색의 순수하고 충만한 울림, 파란색의 깊고 감동적인 울림, 그리고 가장 아득하고 창백한 화색에 이르기까지 모든 색이 혼합되면서 울리는 음악소리에 젖어 나는 행복하고 천진난만하게 그 창작놀이를 계속했다. 그렇게 해서 내 감방 벽에 그려진 풍경화는 살면서 내게 기쁨을 주었던 것, 즉 강과 산, 바다와 구름, 추수하는 농부의 모습을 비롯하여 갖가지 아름다운 것들을 거의 모두 담고 있었다. 그림의 중앙에는 아주 작게 그려진 기차가 달리고 있었다. 기차의 앞부분은 사과 속을 파고드는 벌레처럼 이미 산속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았고, 좁은 터널 안을 달리고 있는 기관차 때문에 어두컴컴한 터널 입구에서 솜털 같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지금껏 내가 하는 놀이가 이번처럼 나를 완전히 사로잡은 일은 한번도 없었다. 나는 예술로의 복귀를 통해 내가 죄수이며 피고인 신세라는 것과 교도소 이외의 다른 곳에서 내 여생을 보낼 가망이 별로 없다는 것을 모두 잊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마술 연습을 잊어버리는 경우도 많았으며, 얇은 붓으로 아주 작은 나무나 밝은 색의 구름을 창조해내는 것으로 내게는 충분해 보였다. 그러는 동안에도 실제로 나와 완전히 반목하게 된 이른바 현실이라는 존재는 내 꿈을 비웃으며 끊임없이 파괴하려고 갖은 애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