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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매일 간수들이 내게로 와서는 철저하게 감시하면서 나를 대단히 기분 나쁜 방으로 데려 가곤 했다. 그 방안에는 전혀 호감이 가지 않는 사람들이 서류에 파묻혀 앉아 있었다. 그들은 나를 심문하였으나 내 말을 아예 믿으려 들지 않았고, 나를 힐책하면서 어떨 때는 세 살짜리 꼬마처럼, 또 어떨 때는 악랄한 범죄자처럼 나를 취급했다. 관청 사무실이나 서류 등으로 정신 없는, 그야말로 괴상하고 지옥 같은 세계를 접하기 위해 굳이 피고인이 될 필요는 없다. 어이없게도 인간이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낼 수 밖에 없었던 모든 지옥 가운데 그런 곳이 늘 내게는 가장 지옥 같았다. 이사나 결혼을 하려고 마음 먹기만 하면, 또는 신분증이나 거주권 증명서 발급 신청을 해보기만 하면, 누구나 곧 그와 같은 지옥의 한 가운데 서있게 된다. 그리고 서류로 꽉 차 있는 그 숨막히는 공간 안에서 짜증나는 시간을 보내야 하며, 늑장을 부리다가 괜히 성급하게 굴고 무뚝뚝한 사람들에게 심문과 질책을 당해야 한다. 더구나 제 아무리 분명하고 진실된 발언을 해도 돌아오는 것이라고는 불신뿐이며, 어떨 때는 벌받는 학생처럼, 또 어떨 때는 범죄자처럼 취급당하기도 한다. 물론 그런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어서 새로울 것도 없는 사실이다. 그 서류지옥에서 내가 이미 질식해버렸더라면, 그림물감조차도 내게 끊임없는 위안과 기쁨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며 내가 그린 작고 아름다운 풍경화도 내게 호흡할 공기와 생명을 불어넣어주지 못했을 것이다.

 

간수들이 또 다시 그 지겨운 소환장을 들고 와서 그림에 몰두하고 있는 나를 방해하려 했을 때, 나는 감방 벽에 그린 그 그림 앞에 서 있었다